일본 패션을 조금이라도 관심 있게 들여다본 분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브랜드가 있습니다. 바로 오라리(AURALEE)입니다. 처음 이 브랜드를 접했을 때 솔직히 ‘이게 뭐가 특별하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화려한 로고도 없고, 독특한 프린팅도 없고, 그냥 단순하고 조용한 옷처럼 보였거든요. 그런데 실제 오프라인 매장에서 니트 한 장을 직접 손에 잡아본 순간, 그 느낌이 확 달랐습니다. 손에 닿는 소재의 무게감, 부드럽게 흐르는 질감, 입었을 때 몸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실루엣까지. 그때서야 왜 이 브랜드에 열성 팬이 생기는지 조금은 이해가 됐습니다. 오늘은 오라리가 어떤 브랜드인지, 어떤 소재를 쓰는지, 어떻게 코디하면 좋은지를 제가 직접 경험하고 공부한 내용을 바탕으로 차근차근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오라리(AURALEE)는 어떤 브랜드인가
브랜드의 탄생과 디자이너 이와이 료타
오라리(AURALEE)는 2015년, 일본의 패션 디자이너 이와이 료타(Iwai Ryota)에 의해 설립된 도쿄 기반의 컨템포러리 패션 브랜드입니다. 이와이 료타는 1983년 일본 고베 출신으로, 중학교 시절부터 패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당시 일본은 패션 산업이 한창 성황을 이루던 시기였고, 빈티지 문화와 다양한 컨셉의 셀렉트숍들이 활기를 띠던 때였습니다. 이 시기의 경험이 그의 패션 감각에 깊은 영향을 남겼다고 합니다.
졸업 후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그가 주로 몸담은 곳들은 하나같이 소재에 집착적으로 몰두하는 브랜드들이었습니다. 심지어 면이나 실의 뜨개질 방식 자체를 직접 개발하는 곳도 있었다고 하니, 그가 얼마나 소재에 대한 철학을 갖게 됐는지 짐작이 가는 부분입니다. 이후 직물 회사인 CLIPCLOP의 영입 제안을 받아 오라리라는 브랜드를 기획하게 됩니다. 그렇게 2015년 봄여름 시즌을 기점으로 오라리가 세상에 첫선을 보이게 되었습니다.
브랜드명 AURALEE는 오래된 미국 민요 제목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햇볕이 잘 드는 땅’, ‘불을 밝혀주는 땅’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이와이 료타 본인도 처음에는 그 의미를 잘 몰랐지만 이름의 울림이 마음에 들었다고 전한 바 있습니다. 나중에 의미를 알고 나서 그의 컬렉션이 지향하는 ‘아침 햇살 같은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고 느꼈다고 합니다. 브랜드 이름 하나에도 이렇게 세심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점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런칭 4년 만에 파리 패션위크 진출
오라리가 단순한 일본 로컬 브랜드가 아니라는 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지점은 그 성장 속도입니다. 브랜드 런칭 이후 단 4년 만에 파리 패션위크에 진출했고, 이후 2018년 FASHION PRIZE OF TOKYO 수상, 2019년 제37회 마이니치 패션대상 신인상 및 시세이도 장려상을 수상하는 등 각종 권위 있는 상을 받으며 그 실력을 인정받았습니다. 현재는 유럽의 주요 럭셔리 편집숍들에서도 판매될 만큼 글로벌 브랜드로 자리 잡은 상태입니다.
오라리가 다른 미니멀 브랜드와 다른 이유, 소재 철학
“소재 제작이 곧 디자인이다”
오라리를 설명할 때 가장 먼저 나오는 단어는 단연 소재입니다. 많은 브랜드들이 트렌드나 컬러, 실루엣을 중심으로 시즌마다 새로운 방향을 잡는 반면, 오라리는 일관되게 소재 자체에 집중합니다. 컷소, 니트, 직물 등 카테고리와 상관없이 “원사 한 가닥부터 꼼꼼히 따져가며 옷을 만든다”는 것이 브랜드의 근본 철학입니다.
실제로 오라리는 소재 개발을 위해 아이슬란드나 몽골 같은 곳까지 직접 찾아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세계 각지에서 최고 품질의 원자재를 직접 발굴하고, 이를 바탕으로 오리지널 패브릭을 개발하는 방식으로 의류를 제작합니다. 이 정도면 단순한 의류 브랜드라기보다 텍스타일 개발 스튜디오에 가깝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기도 합니다.
오라리가 즐겨 사용하는 주요 소재는 울(Wool), 코튼(Cotton), 리넨(Linen), 모헤어(Mohair) 등 자연 소재들이 중심을 이룹니다. 시즌에 따라 슈퍼 키드 모헤어, 슈퍼 라이트 울, 셀비지 데님 등 소재명 자체에 개발 방식과 품질 기준이 담긴 이름들을 제품에 붙이는 것도 눈에 띄는 특징입니다. 이런 작명 방식만 봐도 소재 하나하나에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가 느껴집니다.
눈으로 볼 때보다 입었을 때 더 좋은 옷
오라리의 옷을 처음 온라인으로 봤을 때는 솔직히 ‘이게 이 가격이라고?’라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사진만으로는 이 브랜드의 진가를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직접 입어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오라리 제품은 착용했을 때 비로소 그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는 옷이라는 표현이 가장 정확합니다. 몸의 움직임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실루엣이 흐트러지지 않고, 마치 내 몸의 형태를 기억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어우러집니다.
이건 단순히 소재가 좋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소재와 패턴, 봉제 기술이 하나로 조화를 이뤄서 만들어내는 착용감이라고 봐야 합니다. 일본 장인의 정교한 봉제 기술이 뒷받침되기 때문에 가능한 부분입니다.
오라리의 디자인 특징과 컬러 팔레트
조용하지만 힘 있는 미니멀리즘
오라리의 디자인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차분하지만 힘이 있는’ 스타일입니다. 로고 플레이도 없고, 과한 프린팅도 없습니다. 처음부터 미니멀리즘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니라, 소재 자체에 집중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로고나 화려한 디테일보다는 소재 본연의 아름다움이 더 부각되는 방향으로 디자인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디자인 특징으로는 어깨선이 자연스럽게 떨어지는 구조, 여유 있는 실루엣 속에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형태감, 그리고 남녀 모두에게 어울리는 젠더리스(Genderless)한 스타일을 꼽을 수 있습니다. 무신사나 크림 같은 국내 플랫폼을 보면 남성 고객과 여성 고객이 동일한 아이템을 각자의 방식으로 소화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 때문입니다.
오라리만의 컬러 감각
오라리가 선보이는 컬러는 대부분 뉴트럴 톤과 소프트 파스텔 계열로 구성됩니다. 베이지, 아이보리, 라이트 브라운 같은 자연스러운 중간 색조들이 기본을 이루고, 시즌에 따라 페일 블루, 더스티 핑크, 라벤더 같은 부드러운 파스텔이 포인트로 등장합니다. 채도가 낮고 자연스러운 색감들이라 서로 섞어 입어도 어색하지 않고, 다른 브랜드의 아이템과 매치했을 때도 이질감 없이 잘 어우러집니다.
이 컬러 감각이 오라리 코디를 어렵지 않게 만드는 핵심이기도 합니다. 색을 고민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그냥 자연스럽게 집어들어도 전체 룩이 정돈되는 느낌이 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것이 오라리를 좋아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오라리 추천 아이템과 코디 방법
초보자에게 추천하는 오라리 입문 아이템
오라리를 처음 접하는 분들에게 가장 진입 장벽이 낮은 아이템은 역시 니트와 셔츠입니다. 크림 플랫폼에서도 인기 거래 순위를 보면 하드 트위스트 데님 와이드 팬츠나 슈퍼 라이트 울 체크 셔츠, 에어리 울 체크 셔츠 등 니트와 셔츠 라인이 상위권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오라리의 니트 제품은 소재의 차이를 가장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 카테고리입니다. 모헤어 니트의 경우 브러시드 슈퍼 키드 모헤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최상급 키드 모헤어를 브러시 처리해 가볍고 보송한 질감을 만들어냅니다. 가격은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한 번 입어보면 왜 이 가격인지 이해가 됩니다. 같은 계열의 다른 니트들과는 확연하게 다른 착용감을 보여줍니다.
셔츠의 경우 슈퍼 라이트 울 소재를 사용한 체크 셔츠가 특히 인기가 높습니다. 울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가벼운 착용감 덕분에 봄부터 초겨울까지 두루 활용이 가능합니다.
오라리로 완성하는 미니멀 일본 코디
오라리 코디의 기본은 전체적인 볼륨과 색감을 절제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오라리 셔츠 하나에 오라리 와이드 팬츠를 매치하는 올 오라리 룩도 자연스럽게 완성이 되고, 반대로 기본 흰 티셔츠에 오라리 니트 하나만 더해도 전체 룩이 한층 격이 올라가는 느낌을 줍니다.
신발의 경우 오라리의 뉴트럴 컬러와 어울리는 화이트 스니커즈나 로퍼 같은 심플한 선택이 가장 무난합니다. 가방은 캔버스 토트백이나 가죽 소재의 작은 숄더백 등 군더더기 없는 것을 선택하면 오라리가 가진 분위기를 해치지 않고 완성도 있는 룩을 만들 수 있습니다.
오라리는 코디의 주인공이 되기보다 전체 분위기를 조율하는 역할을 하는 브랜드입니다. 화려한 포인트 아이템 없이도 단정하고 감도 높은 룩을 완성하고 싶은 분들에게 특히 잘 맞습니다.
계절별 활용법
오라리는 시즌마다 소재를 달리하면서도 전체적인 디자인 방향은 크게 변하지 않기 때문에 계절에 맞게 층층이 활용할 수 있습니다.
봄과 여름에는 가볍고 통기성 좋은 코튼 및 리넨 소재 셔츠나 얇은 컷소 티셔츠가 중심을 이룹니다. 여름 오라리 티셔츠는 얇지만 늘어짐 없이 형태를 유지하는 것이 특징이라, 한 철 입고 버리는 여름 옷이 아닌 해를 거듭해 입을 수 있는 옷으로 활용 가능합니다.
가을과 겨울에는 앞서 언급한 울 및 모헤어 소재가 주력을 이루고, 두꺼운 코트나 다운 블루종 같은 아우터류도 소재감 하나만큼은 타 브랜드와 확실한 차이를 보여줍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오라리의 패딩이나 다운 블루종도 전형적인 패딩의 도툼한 실루엣이 아니라 오라리 특유의 가볍고 자연스러운 형태를 유지한다는 것입니다.
오라리가 중고 시장에서 강한 이유
패션 브랜드를 이야기할 때 중고 시장 리셀 가격을 함께 보는 것이 요즘은 하나의 지표가 됐습니다. 오라리는 중고 시장에서 상당히 가치를 유지하는 브랜드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한 소재 품질 덕분이기도 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시즌마다 디자인이 크게 바뀌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오라리는 매 시즌 큰 테마나 방향 전환 없이 미니멀한 컬렉션을 꾸준히 전개합니다. 덕분에 작년 시즌 아이템이 올해 시즌 아이템과 함께 입혀도 전혀 어색하지 않고, 유행을 탔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스테디셀러로 오래 살아남는 아이템이 많다는 것도 중고 거래 시 좋은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가 됩니다.
개인적으로 오라리 제품을 구매할 때 ‘이걸 나중에 팔 수 있을까?’라는 걱정을 다른 브랜드에 비해 덜 하게 됩니다. 가격이 부담스러운 편이지만 중고 시장에서 활발하게 거래되고 가격 방어가 되는 편이라,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합리적인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오라리가 잘 맞는 사람, 그렇지 않은 사람
어떤 브랜드든 모든 사람에게 맞을 수는 없습니다. 오라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라리가 잘 맞는 분들은 화려한 디자인보다 소재와 착용감을 중시하는 분, 유행에 흔들리지 않는 클래식하고 롱런 가능한 옷을 원하는 분, 전체적인 분위기를 차분하고 세련되게 만들고 싶은 분들입니다. 또한 옷을 자주 사기보다 좋은 것 하나를 사서 오래 입는 방식을 선호하는 분들에게도 잘 맞습니다.
반대로 오라리가 잘 맞지 않을 수도 있는 분들은 로고나 그래픽이 있는 명확한 포인트를 원하는 분, 시즌마다 새로운 트렌드를 적극적으로 따라가고 싶은 분들입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씀드리면, 가격 자체가 상당히 높은 편이라 예산이 충분하지 않다면 진입 장벽이 느껴질 수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다만 앞서 언급드린 것처럼 중고 시장을 잘 활용하면 보다 합리적으로 경험해볼 수 있습니다.
마치며
오라리(AURALEE)는 화려하게 눈에 띄는 옷을 만드는 브랜드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하나의 아이템이 주목받기보다 착용자 전체의 분위기를 조용하게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는 것, 그것이 오라리가 추구하는 방향입니다. 처음 접할 때는 단순해 보일 수 있지만, 직접 입어보고 소재를 느껴본 순간부터 이 브랜드에 빠져드는 분들이 많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소재가 곧 디자인이라는 철학을 가진 브랜드, 트렌드에 흔들리지 않고 매 시즌 일관된 방향을 지켜나가는 브랜드. 일본 미니멀 패션에 관심이 생기셨다면, 오라리를 첫 번째 선택지로 진지하게 고려해 보실 것을 권해드립니다. 처음에는 가격이 부담스럽더라도, 한 번 경험하고 나면 그 가치를 충분히 납득하게 되는 브랜드가 바로 오라리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지금은 오라리 아이템이 옷장에서 가장 자주 꺼내 입는 것들 중 하나가 되어 있습니다.









